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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끄적끄적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by 행복한쥬이 2024.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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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리운 감정과 벅찬 슬픔이지만 그 감정을 가득 안고 글을 써내려간다.

 

지난 금요일(2024년 4월 5일) 오전 9시 20분경 일을 하고 있는데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놀라지 말고 들어, 엄마가 옥상에서 떨어져서 지금 구급차를 불러서 이동중인데 의식이 없어..."

울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듣자마자 내 심장도 급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럼 지금 엄마랑 같이 구급차에 타고 있는거야?"

"아니, 엄마는 앞차에 태워서 가고 있고 나는 뒤차로 따라가고 있어. 누나 지금 올라와야 할 것 같아."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그냥 머리가 멍해졌다.

그리고 몇 분 뒤...

"누나, 병원에 왔는데 엄마 심장은 뛰는데 의식이 없대..."

그리고 또 몇 분 뒤

"누나... 엄마 돌아가셨어."

 

이 모든 일이 10분 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엉엉 우는 남동생...

당장 직장에 이야기를 하고 나는 조퇴를 하였다.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과 여동생들을 챙겨서 엄마가 계신 곳으로 이동했다.

 

나는 지방에 살고 엄마는 수도권 근처에 살았다.

최대한 빨리 이동하고 싶었지만 여차저차 이동 시간이 6-7시간 정도 걸리게 되었고,

정해진 장례식장 빈소에 도착했을 때 8시쯤 되었다.

 

올라가는 길에 동생에게 어느 장례식장에서 모실 건지 등을 물어보고

장례식장 계약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어보았다.

동생은 방금 전까지도 이야기했던 엄마가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난 충격에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빨리 빈소를 준비해야 할 것 같았지만 그 모든 책임을 동생에게 지게 할 수 없었다.

 

엄마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도 전에 마주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와 선택들은 참 괴롭기만 했다.

 

그렇게 올라가는 차 안에서

우리 가족은 모두다 울다가 침묵했다가 울다가 침묵했다가를 반복하며 믿을 수 없는 현실을 천천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빈소를 준비해야하니 장례식장에서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어봤다. 그리고 상조회사 가입이 되어있는지도 확인을 했다. 상조회사라니... 상조회사를 가입할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이런 현실이 그저 슬프고 믿기 어려울 뿐이었다.

보통 3일장을 하는데 지금 너무 늦은 저녁시간이라 음식도 준비가 안 되고 사실상 할 수 있는게 없다. 4일장을 하시기도 한다. 선택을 하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3일장을 하기에는 사실 1일인 오늘이 그냥 손님을 받아도 드릴 게 없는 날이 되는 것이고,

4일장을 하면 장례식 기간이 길어지기도 하고 엄마가 계속 영안실에 계신다는 것도 뭔가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3일장을 하기로 하고 꽃을 몇만원짜리로 해서 꾸밀 건지 음식은 찬을 몇 개로 할 것인지 수의는 무엇으로 할 것인지 등등등 장례식장 직원이 종이를 넘기며 이것저것 설명을 했다.

 

선택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그리고 올라오는 길에 장례식을 어떻게 치뤄야 하는지 찾아보기도 했고 그런 도움을 받으며 최선의 선택을 했다.

 

결혼식도 장례식도 처음이라 서툰 것 뿐이었다.

감정을 달래기도 어려운데 해야 할 일은 가득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준 부고 알림 문자 메시지를 받고 지인들에게 부고 문자 메시지를 돌려야 했다.

 

"아.. 이것도 내가 해야하는 거구나..."

 

기분이 이상했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문자를 내가 내 지인들에게 스스로 돌려야 하다니...

연락처에 들어있는 번호들을 보면서 누구한테 어디까지 돌려야 하는 거지...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결혼식보다도 장례식이 더 중요하고

결혼식 문자 또한 받지 않으면 서운하다고 느낀다는데

장례식 문자는 정말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다면 다 알리는게 원칙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하지만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전화번호는 이게 그 사람이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번호인지도...모르겠고

카카오톡으로 다 보내야 하는 건가?...

정말 고민이 되었다.

 

책상에 앉아서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번호로 부고 문자를 돌렸다.

경황이 없어 내가 정말 다 돌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장례식을 치뤄보니 정말 쉽지 않다.

 

혹, 지인의 장례식 문자를 받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그 사실을 지인을 통해 알게 되더라고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길...

그리고 나 또한 당연히 그렇게 경황이 없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그렇게 부고 문자를 다 보내고 나니 9시가 훌쩍 넘었다.

상복도 준비가 안되어 있고, 엄마 영정사진도, 음식도, 아무것도 없었다...

(영정사진을 준비하지 않았기에 어떻게 하지... 싶었는데 엄마 사진을 주면 장례식장에서 영정사진을 만들어준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영정사진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렇게 1일이 지나갔다.

 

2일째, 아침 9시에 상복을 주신다고 하셨다.

하지만 조문객들이 어제 문자를 받고 8시부터 왔다.

장례식장에게 이야기 해서 상복을 조금 더 빨리 받고 입었다. 상복은 대여이다.

꽃이며 영정사진이며 음식이며 도우미 이모님까지...

10시쯤 되니 이제 드디어 빈소가 완성되었다. 조문객들도 많이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멀리서 온 지인들 오랜만에 온 지인들 친척들과 인사하며 울기도 하고 반가워하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엄마가 돌아가신 당일 날

원래 주말에 약속해서 만나기로 한 친구가 있어. 먼저 따로 톡으로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친구에게 전화가 왔는데

친구가 하는 말이 "엄마가 준비해 준 잔치라고 생각하고 장례식 잘 치르고 와." 라고 이야기해주는데

장례식을 치르면서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점점 이해가 되었다.

 

장례식 때 친척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했었어야 했는데

어색하여 대화할 용기가 없어 그냥 있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많이 서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둘째 날, 입관식, 입관예배

원래는 입관예배를 먼저 드러야 했는데 장례식장은 10:30분에 입관식을 진행하기로 되어 있었고 미리 입관예배를 했어야 했는데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입관식을 하고 입관예배를 하게 되었다.

 

"하.. 입관식... 정말 마음이 힘들고 괴로웠다."

 

사고 당시 엄마가 머리 쪽에 피를 많이 흘려서 닦는다고 닦았지만 입관식 진행 중에 피가 머리에서 새어나올 수 있다고 이야기하셨다. 살아있는 사람은 피가 지혈되지만 죽은 사람은 피가 지혈되지 않기에 계속 피가 나온다고...

 

꽁꽁 싸매진 엄마의 머리,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틀어진 얼굴...

정말 엉엉 소리내며 우리 가족 모두 울었다. 엄마를 위해 기도하고 엄마를 만지며 천국에서 만나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입관식을 마쳤다.

 

그리고 입관예배를 드리는데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찬송을 부르며 말씀을 들으며 계속 울었다.

그래도 엄마를 축복하며 이렇게 기도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점점 마음이 만져지는 것 같았다.

 

셋째 날, 새벽 5:30분 발인식을 위해 5시에 발인예배를 드렸다. 엄마는 화장해서 선산에 모신 아빠 옆에 묻을 예정이었다.

 

화장을 위한 비용을 지불하였다.

화장에 들어가는 엄마를 보면서 또 울었다.

그리고 2시간 후...

한 줌의 가루가 된 엄마를 만났다.

 

그리고 엄마를 안고 장지로 향했다.

시골 장지에서 천국환송예배를 드렸다.

찬양과 말씀이 큰 위로가 되었다.

 

엄마를 묻고 또 함께 시골까지 와서 위로해 준 지인들과 인사하며 그렇게 마무리했다.


초등학교 4학년 아빠가 돌아가셨다.

나는 너무 어렸다.

아빠는 암 투병으로 인해 병원에 있다가 할머니 댁에 요양차 가 있으셨다가 갑자기 거기서 병세가 심해지셔서 돌아가셨다.

아빠가 아파서 떨어져있던 시간 때문이었을까?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아무런 생각과 느낌이 없었다.

 

중학교 1학년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갑자기 비가 많이 오던 날 산책을 한다며 나가셨는데 그만 홀에 빠지셔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증조할머니와 깊은 정이 있지 않았다.

그냥 이로 인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괜찮으실까? 걱정되는 마음이 더 컸다.

 

대학교 3학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마음이 아프셨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마음이 아프신지 몰랐다.

그래서 너무나 속상했다.

할아버지를 지켜드리지 못한 자책감에 괴로웠다.

할머니가 괜찮으실까?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도 마음이 아팠다.

우울증과 불면, 조현병 등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처음 엄마가 아프기 시작했다.

하지만 많이 치유되고 좋아졌었는데

2-3년전에 코로나에 걸린 엄마는 불면증과 몸에 힘 없음 등으로 또 그 시절만큼

많이 아프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 최근에 기력을 회복하고 그래도 많이 좋아졌었다.

그래서 사실 엄마에 대한 걱정도 덜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엄마가 천국으로 갔다는 사실이 그래서 더욱더 서운하고 속상했다.

내가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멀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살았던건가.. 싶었다.

 

죽음 이후의 삶,

구원에 대한 확신

천국을 향한 소망

 

크리스천이지만 아직도 죽음은 나에게 두렵고 무서운 것이었다.

 

"주님, 왜 저는 아직도 죽음이 두렵고 무서운 걸까요?..."

이렇게 자주 묻기도 했다. 붙잡고 기도도 했다.

 

엄마의 장례를 치르면서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구원에 이르는 그 문은 아주 좁은데 그것에 대한 판단을 누가 할 수 있을까?

나의 미련하고 연약한 지식과 경험으로 구원의 여부에 대해 판단했던 어리석었던 지난 날을 회개했다.

 

위로해주셨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 이 세상에서의 삶은 굉장히 짧고 그 이후의 삶은 이 세상의 삶에서 맛보았던 기쁨과 비할 수 없는 기쁨이 있는 곳이라는 확실이 들었다.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마주한 우리 가족...

누구나 마주한다는 이별이었지만 마음을 추스르는 건 정말 중보기도가 많이 필요했다.


해드리지 못한 후회가 가득 했다.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엄마가 지냈던 곳에서 유품을 정리하며 우리 사남매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울다가 웃었다

엄마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되돌아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엄마를 알고 있는 많은 지인들이 엄마가 착하고 순했다. 정말 아끼고 열심히 살았다고 이야기해 주시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엄마가 진짜 잘 살았구나! 는 생각에 뿌듯하고 감사했다.

 

장례식장에 오신 지인이 이야기를 했다.

 

"2년 전에 엄마가 병 투병을 하다가 돌아가셨는데 아직도 마음이 잘 추스려지지 않아요. 감정을 억제하지 마시고 울고 싶으며 많이 우세요."

"어머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감정을 억제하셨어요?"

"아... 네... 가족들 분위기가 감정을 드러내기 보다는 숨죽여서 몰래 울고 혼자 울고 했던터라.. 지금 돌아보니 그냥 엉엉 소리내어 울걸... 감정을 억제했던 게 후회가 되더라구요."

"아.. 그러셨구나..."

 

이런 대화를 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감정을 억제하지 않고 감정 그대로 표현하며 장례식을 치뤘다.

그래서 그런지 장례식을 치르고 난 후 천국 환송예배를 드리고 엄마를 천국으로 보내드리고 난 후 내 마음은 평안해졌다.

 

죽음 이후의 삶

알 수 없다.

그러나 천국을 향한 소망이 있기에 참 기쁘고 행복하다.

 

영원한 것은 없지만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는 삶이라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겸손하게

감사하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고민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

 

팀켈러 목사님의 죽음에 관하여와

CS루이스의 헤아려 본 슬픔에 대해 읽어볼 예정이다.

 

 

엄마, 우리 천국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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